컴퓨터는 내 소중한 보물 단지

뇌병변 2급인 나는 오른손이 불편해서 글쓰기가 어렵다. 그런데 동생들이 컴퓨터를 하는 것을 보니, 나도 한번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생각과 실천은 이제 와서 돌아보면 참 잘한 일이다. 장애로 힘들고 아팠던 일들, 행복했던 일들을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고 아름다운 시도 쓸 수 있지 않은가?

노력하면 할 수 있다 .

1993년 10월부터 야학 영어 선생님께서는 학생들 네다섯 명을 모아 일주일에 두 번,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무료로 컴퓨터를 가르쳐 주셨다. Windows가 아닌 DOS를 사용하던 시절이라, 우리가 배운 컴퓨터 프로그램은 DOS를 비롯해 한글, 캐드 등이었다. 나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일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다.

처음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판 속도가 늘지 않았다. 1분에 30타 이상은 힘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자판 두드리는 연습을 계속 했더니,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 지나 드디어 지금은 300타가 넘는다. 장애는 단지 불편한 것일 뿐, 노력하면 불가능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때부터 내게는 다른 세상이 열렸다. 시상이 떠오르면 컴퓨터로 글도 쓰고, 책도 읽는다. 또 수필과 시를 가르쳐 주시는 좋은 교수님을 만나, 9년이 넘도록 작가가 되기 위한 글공부를 하고 있다.

이후 정립회관 정보화 교육장에서 3개월 동안 실시한 한글, 워드, 엑셀, 플래시, 포토샵 교육 과정도 참가했다. 그리고 1999년 말경에는 일자리까지 얻었다. 10개월 동안 워드 입력과 수정 작업을 하며 번 돈은 월 최대 64만원. 내가 컴퓨터로 돈을 벌다니…….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목표를 차곡차곡 달성해 가며

직업의 일환으로 컴퓨터를 마주하다 보니, 이제는 좀 더 컴퓨터를 깊이 배우고 싶었다. 일반 학원을 알아보았지만, 그곳은 교육비도 비싸고, 간다고 해도 내 불편한 손이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언제나 마음뿐이었다. ‘학원들은 돈을 많이 버는 것 같던데, 장애인반을 무료로 만들어서 사회에 기여하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립회관에서 웹마스터반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서류 합격 이후 면접에 오라는 연락이 왔다. 사실 나는 나이도 많고 언어 장애에다가 손과 다리까지 불편하다. 즉, 2년 동안 배우더라도 취업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취업 여건이 안 되는 사람에게 취업 공부를 할 자격을 주겠어…?’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면접을 하고 며칠 후,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두려웠다. ‘나이도 많고 장애도 다른 사람보다 심한데, 열심히 해도 따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지만 2004년 2월 2일, 웹마스터반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이 걱정들을 조금씩 지워 나갔다. 공부는 재미있었고, 자판 연습도 되어 있기에 속도를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꽤 잘하지는 못했지만, 가끔은 내 자신이 대견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 학습의 좋은 점은 자격증 취득 등으로 ‘끊임없이 목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하면서 하루종일 책상에만 앉아 있느라 살이 찌고 배가 나오기는 했지만, 나는 독한 감기몸살도 꾹 참고 2년 동안 지각 한번 하지 않았다. 때로는 아침부터 ‘오늘은 정말 쉬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기도 했지만, 뒤떨어질까봐 참아 내었다. 너무 피곤해 다리에 힘이 빠져 넘어지면서도 아침 저녁으로 나갔다. 컴퓨터 그래픽스에서도 불편한 손 때문에 펜 툴이 잘 안 되어 애를 먹었지만, 연습을 거듭한 결과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마침내 나는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자격증과 인터넷 정보검색사 3급, 2급을 취득하였다. 10년 전, 워드프로세스 3급 필기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실기에서 떨어져서 포기하고 있던 워드프로세스 2급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장애인 기능대회에 나가 ‘워드프로세스 은상’을 수상하고, 정보화한마당에서 ‘워드프로세스 동상’도 수상했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스 운용기능사 실기시험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이 역시 앞으로 내가 넘어야 할 산이며, 이루어야 할 목표다. 이렇게 나는 내 앞에 놓인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용기도 생겼다. 공부하면서 좋은 친구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또한 행복이며 행운이었다. 또 2년동안 공부하면서 점심과 차비로 지원받은 월 10만원, 대회에 나가 받은 상금, 두 번 이나 받은 장학금 등이 내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 지금은 3백만원이 넘는다. 결국 나는 돈을 벌어가면서 4개의 자격증과 좋은 경험들을 얻은 것이다. 이런 내 자신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선생님’이 되고 보니

그리고 2년의 자산은 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했다.

“정보화 교육장에서 보조강사로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

선생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나는 2006년 2월 2일부터 컴퓨터 보조 강사를 맡았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선생님이 앞에서 설명을 하시면, 나는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에서 가르쳐 주었다. 수강생들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라 배운 것을 자주 잊어버리지만, 쉬는 시간에도 질문을 계속할 만큼 열의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보조강사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분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실력이 늘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니 발음이 좋아졌고, 다리에 힘이 생기고 건강하게 살도 빠졌다. 무엇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쑥스럽고 행복했다.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행복했다. 늘 남에게 받기만 하던 내가 누군가를 위해 일할 수 있다니, 이만한 보람이 없었다. 또 우리 과정의 수강생들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로서,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니, 그 훈훈한 사랑이 넘쳐 내 마음에까지 와닿았다.

보조강사를 하면서도 나는 관련된 일을 틈틈이 한다. 직업재활 알선 선생님의 소개로 지난 가을에는 DB구축, 즉 데이터를 입력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하루종일 앉아서 일하는 것도 정말 좋았고, 아침저녁 출퇴근하는 자의 기쁨도 맛보았다. 월급도 80만 원이었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원래 알뜰한 내게는 용돈의 8배나 되는 돈이다. 이렇게 계속 일할 수 있다면 부자가 될 것 같다. 컴퓨터 관련 역량을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은 많이 생기는 편이다. 같은 자세로 앉아서 일하는 것이 수월한 장애인들에게 컴퓨터만큼 일감을 획득하기 수월한 역량은 많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많은 경험들을 통해 나는 단단해졌다. 옛말에 ‘쇠는 불에 달굴수록 단단해진다’라고 하지 않은가. 컴퓨터로 다진 나의 역량(쇠)이 사회를 경험하고 더 많은 공부를 하면서(불) 단단해지는 것이다.

바쁘고 행복한 일상

지금은 프로젝트가 끝나서 다시 보조강사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냥 집에 있다면 늦잠을 자고 혼자 게으름만 늘텐데, 다행히 일이 계속 주어진다. 보조강사를 하니 컴퓨터도 잊어버리지 않고, 사람들도 사귀고, 정보도 들을 수 있다. 누군가 “쉬는 날 뭐하세요?”라고 물으면 빙그레 웃는다. 나는 혼자서 잘 논다. 자격증 공부도 하고, 글을 읽고, 시나 수필도 쓴다. 사람도 만나고, 수영도 한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강의를 듣거나 책을 사거나 지식을 검색하기도 한다. 친구들과 메신저도 하고, 가끔 게임도 한다. 비장애인보다 더 바쁘게 살고 있다.

모두들 나를 보고 “얼굴이 좋아지셨다”고 한다. 보람과 자신감이 아마도 얼굴을 밝게 해 주었을 것이다. 만일 컴퓨터 교육이 없었다면 지금 이런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때로는 10년만 젊었어도 더 좋은 조건으로 취업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러나 지금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아! 그러나 아무리 내가 찾고 노력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질 수는 없다. 컴퓨터와 좋은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다. 여러 선생님들, 교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까. 내가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변함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아낌없이 봉사하는 것이다.

“선생님, 교수님, 제가 이렇게 컸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나를 성장시킨 컴퓨터야! 네가 있어서 정말 고맙다. 넌 나의 소중한 보물단지야!”